Takamido_SS

어느 오하아사 신자의 평범한 일상 - 1

Info_K 2015. 8. 10. 12:19

정시에 맞춘 알람이 귓전을 시끄럽게 울렸다. 미도리마는 오른손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눌러 끈 후, 협탁 위의 안경을 집어서 쓴다. 그리고는 선명해진 시야에 들어온 손등을 바라본다. 희고 가는 손가락 끝에 깔끔하게 손질된 손톱을 보며, 미도리마는 익숙해진 이질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아침은 철저한 의식처럼 거행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는 오른팔을 짚고, 바닥에 먼저 딛는 발은 왼쪽이다. 무슨 옷이든 단추를 풀 때는 맨 위부터, 채울 때는 맨 아래부터. 방에서 나갈 때 손잡이는 오른손으로 돌리고,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오른발로 시작해서 왼발로 끝나도록. 


"좋은 아침입니다." 


받아줄 사람이 없어진 인사를 빈 의자를 향해 건네며, 미도리마는 왼손으로 의자를 빼서 앉았다. 된장국과 밥, 구운 조기와 TV 리모콘 옆에는 정갈한 글씨로 쓰여진 메모가 있었다. 


[데워서 먹으렴! 우유는 냉장고에 있단다 -엄마] 


얼마 전 여동생이 소학교를 조금 먼 곳으로 가게 되며 미도리마의 일상에도 작은변화가 생겼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부모님이 차로 등교를 시켜주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나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침 인사 역시 그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기에, 아무도 없는 의자에 인사를 한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미도리마는 오른손으로 리모콘을 집어 TV를 켰다. 


[OO월 XX일의 오하아사~!] 


젓가락을 움직이며 TV 화면에 눈을 고정한다. 그는 이미 오늘 자신의 순위는 알고 있었다. 12위. 


[오늘의 12위는...안됐네요~ 게자리인 당신! 당신이 모르는 사이 소중한 친구에게 상처를 줘버릴지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 또 조심! 오늘 게자리인 당신의 럭키플레이스는 물이 많은 곳이나 농구 코트! 럭키아이템은...] 


소중한 친구? 그가 지금 친분이 있는 상대는 아카시 정도였다. 그가 자신 때문에 상처를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고 했지. 식사를 마친 미도리마는 다시 한 번 오하아사의 내용을 머리에 새기며 그릇을 개수대에 넣었다. 럭키아이템이 이미 구비하고 있는 물건 중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역시 최하위인만큼, 가장 큰 걸 써야겠지. 오늘 경기는 나가지 않겠다고 미리 말해둬야겠다. 그리고 자율연습을 하고... 학교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미도리마는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종교의식과도 같은 아침 일과는 현관문을 밖에서 잠근 후 두 번 문고리를 돌림으로 완성된다. 찰칵, 찰칵. 이러한 일과의 반복 속에서 그는 그가 언제 어디서라도 변함없는 자기 자신임을, 미도리마 신타로임을 다시 한 번 새긴다. 


"안녕, 미도링!" 


교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림으로 그린 듯한 분홍 머리의 미소녀가 가볍게 그의 어깨를 치며 말을 걸었다. 미도리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무난한 인삿말로 대꾸했다. 


"...좋은 아침, 모모이." 

"오늘 럭키아이템은 뭐야? 아무 것도 안 들고 있네." 

"토끼 머리핀이란 것이다." 

"아, 어쩐지 두 개나 하고 있더라니~ 귀엽다! 잘 어울려!" 


모모이의 칭찬에 미도리마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머리에 달려 있던 주먹만한 토끼 마스코트 두 마리와 어깨에 닿게 기른 머리카락이 살랑 흔들렸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던 모모이는, 시계를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라며 미도리마의 손목을 잡았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늦겠어 미도링, 빨리 가자!" 

"뛰지 않아도 충분히 지각은 하지 않는다는," 

"빨리! 지금 가야 테츠랑 마주칠 수 있단 말이야!" 

"쿠로코랑 마주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다..." 


미도리마는 한숨을 쉬며 그를 잡아끄는 모모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스커트 자락이 바람을 타고 무릎 언저리를 스쳤다. 


지금의 그는 기적의 세대의 슈팅가드 미도리마 신타로가 아닌 미도리마 마코토, 중학 여자농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불려지는 테이코 여자농구부의 주장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미도리마 신타로는 가끔 여자가 되곤 했다. 

변하는 것은 그의 신체만이 아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상이 그가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변해 버렸다. 이 현상은 자주는 일 주일에 서너 번, 뜸하게는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발생했다. 발생하는 원인을 모르니 막거나 피할 방법도 없었다. 길어도 이틀 이상 지속된 적은 없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가 처음 이 이상현상을 눈치챈 건 유치원 때였다. 


-엄마, 오늘은 치마 입고 갈래요. 

-어머나 신타로, 치마는 여자애들이 입는 거란다. 

-그렇지만 어제는 입었잖아요. 

-어제도 이 멜빵바지를 입었는걸? 

-아닌데... 어제 핑크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신타로, 혹시 꿈을 꾼 것 아니니? 신타로는 남자아이라 핑크색 원피스가 없단다. 


그 전까지 미도리마는 막연히 자신의 이름이 두 개라고만 생각했다. 자주 불리는 이름과 가끔 불리는 이름. 

하지만 언어화된 기억과 개념이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자라가며, 미도리마는 점점 둘의 차이를 알아가게 되었다. 

'신타로'와 '마코토'는 둘 다 부모님과 그랜드피아노와 자신의 방과 백과사전이 있었지만, 

'마코토'는 '신타로'의 경찰차 변신 로봇과 장난감 칼이 없었으며, 

'신타로'는 '마코토'의 핑크색 원피스와 리본 달린 에나멜 구두가 없었다. 

무엇보다, '신타로'에게는 '마코토'에게 없는 신체기관이 있었다. 이것이 남자와 여자의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로부터도 두어 해가 더 지난 후였다. 


자신이 마코토일 때와 신타로일 때, 세상은 자신을 다르게 취급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어린 미도리마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둘은 닮았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인물로, 가끔 서로의 정신이 바뀐 채 생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미도리마는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마코토'에게 메시지를 남겨 보기로 했다. 


[미도리마 마코토 씨 

안녕하세요. 미도리마 신타로라고 합니다. 저는 가끔 마코토씨가 되곤 합니다. 그 동안 마코토씨도 제가 되어 생활하고 있나요? 이 편지를 보면 답장 주세요. 

미도리마 신타로 씀] 


최대한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는 두 번 접어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그 뒤로 그가 몇 번이고 마코토와 신타로를 오가는 사이, 그쪽에서는 어떠한 답장도 오지 않았다. 그가 마코토의 책상 위에 올려둔 편지도 늘 그대로였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신타로'뿐이었던 것 같다는 쪽으로 가설은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쯤해서 미도리마는 자신이 마코토였던 사이 신타로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부모님이나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께 물어보면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피아노 강습을 듣고 자습을 했다는 대답밖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마코토로서 생활하는 동안, 신타로는 자신의 평소 생활패턴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한 언제나의 패턴을 만들어 그가 '없는' 사이 발생할 사건들을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것은 신타로와 마코토, 몸도 모습도 이름도 다른 두 사람의 삶을 하나의 인격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삶에 최소한의 일관성을 주고자 하는 그의 무의식적인 노력이기도 했다. 

그날부터 미도리마는 신타로와 마코토를 위한 규칙과 의식을 만들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나이트캡을 쓰고 자기, 현관문을 나설 때는 꼭 오른발부터 딛기 같은 작은 생활습관부터 통일성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약속한 일은 꼭 지키도록 노력하기, 무슨 일에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하지만 그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운에 맡기기 같은 큰 신조를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신조를 '진인사대천명'이라는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가 막 12세가 된 어느 여름날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진 그날, 그는 마코토였다. 그 달 들어 벌써 다섯 번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여자가 되었다 남자가 되었다 하는 걸까. 이 현상에는 무슨 규칙성이 있는걸까.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을 반복하며 식사를 하던 그의 귀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틀어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ㅁㅁ월 ㅂㅂ일의 오하아사~! 오늘의 별자리 순위를 전해 드려요! 오늘의 5위는 양자리인 당신!] 


"오하아사...?" 

"별자리 운세를 말해주는 방송이란다. 마코토는 처음 보는 거겠네."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니, 각 성좌를 상징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화면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어느새 식사를 하는 것도 잊고 TV화면을 응시했다. 


[오늘의 12위는... 안타깝네요, 게자리인 당신!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기! 하지만 걱정 마세요~ 진인사대천명이란 말도 있잖아요? 럭키아이템인 주황색 머리방울을 준비하면 행운이 올라간답니다! 럭키플레이스는 공원!] 


게자리, 12위. 아이들 사이에서 별자리 궁합이 유행하는 바람에 자신의 별자리가 게자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그 날 이후 오하아사라는 방송을 매일같이 챙겨보며 게자리의 순위를 체크했다. 그 결과, 게자리가 12위인 날 반드시 자신이 마코토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마코토인 날은 무조건 게자리가 12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마코토든 신타로든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지 않았던 날은 게자리의 운세가 하위권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그의 삶의 의식에는 '오하아사를 매일 확인하기', '그날의 게자리 럭키아이템을 챙기기'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