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들려고 누웠다가 생각났던 썰이 지금 떠올랐다. 인사를 다해서 타카오를 짝사랑하는 미도리마가 보고 싶다. 내 안의 미도리마는 일단 마음을 자각하면 대체적으로 이 둘 중 하나임.
1.인사를 다해 부딪쳐본다
2.인사를 다해 상대방을 좋아하기만 한다.
1번과 2번을 가르는 기준은 미도리마가 '사랑'을 어디까지로 보고 있느냐임.
마음을 고백하고 상대방과 이어지고 둘이서 함께 걸어가는 행복한 미래인 경우 1번,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2번
어느 쪽이든 자기 마음 자각이 늦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1번리마(?)는 자각하는 순간부터 길일을 잡아 고백 준비를 할 것 같고 2번리마는 겉으론 아무것도 안 드러나겠지. 이 소재로 1RT당 이야기잇기할까 했는데 어차피 알티랑 상관없이 썰풀 것 같아서!
니네 진짜 사귀는 거 아니냐?
같은 반 남학생이 이런 말을 꺼냈을 때, 언제나처럼 미도리마를 위해 준비한 오시루코를 꺼내놓고 그를 향해 돌아 앉아 시덥잖은 장난을 치던 타카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잖아, 여친한테도 그렇겐 안 하겠다.
타카오는 실실 웃으면서 농담처럼 대꾸해주다가, 좀 도를 넘은 드립이 오가자 정색을 하며 그만두라고 함. 이 때까지만 해도 미도리마는 타카오를 좋아하지 않았음. 정확히는 그런 마음이라고 자각하지 못했음.
슈토쿠 농구부 스타멘이자 자신의 파트너가 아닌, 교실에서의 타카오 카즈나리는 매우 평범하고 사교성 좋은 학생이었음. 같은 반 친구들과 그라비아 잡지를 돌려 보거나 중학교 때 여친 이야기, 소개팅 이야기나 전교 미녀순위 같은 시덥잖은 화제로 불타오르는.
행동거지가 나긋나긋한 남자 고문 선생을 두고 좀 짓궂은 남자애들이 호모 아니냐고 낄낄거리며 비하적인 농짓거리를 던질 때도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화제에 어울리던 타카오의 평소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호모포비아일 수도 있는 이성애자'라고 판단했을 거임.
당연하게도,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미도리마도 그렇게 판단했음. 우선은 스스로가 게이인가에 대한 확신조차도 없었음. 이게 '사랑한다'는 마음인가? 미도리마는 타카오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지만 함께 있기만 해도 대책없이 가슴이 뛴다든가 소유하고 싶다든가 보면 가슴이 녹아내릴 것 같다는, 소설에서 흔히 묘사되는 그런 감정은 아니었음. 물론 달콤한 설렘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모든 감정의 기반에 있는 것은 탄탄한 신뢰였음. 모든 것을 믿고 맡겨도 불안하기는커녕 오히려 안심이 되는 그런 마음.
그렇기 때문에 그 신뢰를 스스로 깨고 싶지 않았음. 어차피 들어가지 않을 슛을 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음. 타카오에게 애인이 없는 지금 그는 타카오에게 가장 가까운 타인이었음. 적어도 미도리마는 그렇게 판단했음. 그가 할 수 있는 인사는 자신의 안에서 이 감정의 파도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음. 가끔 파도가 너무 거칠게 몰아칠 때면 평소와 달리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의 관계를 부정하던 타카오의 표정을 떠올리며 억지로 물살을 잠재우곤 했음. 약간의 욱신거림과 씁쓸함은 덤이었음.